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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안느 페이스풀 ( Marianne Faithful ) - 천사의 얼굴을 한 창녀 였던 여자

 

 

1946년 12월 영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9년 세계 여성상 평생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가수이자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가 스타일 모델을 삼을 만큼 유명한 패션 아이콘이자,

롤링스톤즈 믹 재거의 연인으로 더욱 유명했던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 늘 따라다녔던 수식어는

 

`천사의 얼굴을 한 창녀` `퇴폐의 요정` `더러운 소녀`

 

천사같은 얼굴과 해맑은 미소를 가진 한 소녀가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어린시절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마리안느 페이스풀, 그녀의 아버지는 런던 대학의 교수였고 대대로 오스트리아 귀족 혈통을

이어받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유복하지만 엄격한 집안의 전통을 따라서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 좋은 신부감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녀....

 

그러던 어느날 여름방학에 친구와 함께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롤링스톤즈의 론칭 파티장에 놀러가고 그곳에서 롤링스톤즈의

매니저가 17살의 마리안느의 매력에 빠져 당장 가수 계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평소 학교 근처 카페에서 가끔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그녀라 그녀는 쉽게 찬성하고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첫 앨범은 대 성공이었다.

그녀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가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소녀같은 목소리를 좋아했다.

 

가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나게된 동료 가수와의 결혼을 했고 아이도 하나 낳게 되어 순탄한 삶을 사는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와중 그녀의 인생이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연예계에서 나쁜 남자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롤링스톤즈의 보컬 믹 재거와 사랑에 빠지게 된것이었다.

(마리안느의 첫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as tears go by`는 믹 재거가 써준 곡이었다.)

 

마리안느는 믹 재거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편과 이혼했고, 항상 롤링스톤즈의 투어를 따라다니며 늘 믹 재거와 함께했으며

결혼은 하지않았지만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던 19살의 소녀는 단숨에 최고의 록스타와 걸맞는 멋진 여자친구가 되어 화제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화려한 삶이 시작되었고, 마리안느는 여성들의 질투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 그리고 따라하고 싶은 최고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화려한 록스타들의 삶 뒤에는 늘 마약이 함께했고 자연스럽게 마리안느도 그들의 난잡한

사생활속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1960년대 히피문화와 성해방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당시 젊은이들은 술 담배 마약 섹스에 중독되었고

마리안느 역시 다를 수 없었다.

 

처음엔 마리화나에 손댔던 마라안느는 점점 모르핀 헤로인 코카인과 같은 강도 높은 마약까지 손대며 오히려 마약을 먼저

시작했던 롤링스톤즈 멤버보다 더욱 심한 중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67년 어느날 드디어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레즈렌드 별장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마리안느를 단숨에 추락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롤링스톤즈 멤버 키스 리차드의 별장에서 열린 파티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충격적인 현장을 보게 된다.

 

술 담배 그리고 마약에 찌든 파티 현장, 9명의 파티원 중 여자는 마리안느 페이스풀 단 한명.

게다가 그녀는 알몸 상태였고, 경찰이 출두한 후 간신히 카페트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후에 인터뷰에서 마리안느는 경찰이 출동한것조차 마약의 환각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건은 모조리 언론에 보도되고, 유일한 여자였던 마리안느는 치명타를 입게된다.

 

마리안느의 이미지는 단숨에 추락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상황을 과장하는 성적인 루머들이 ( 캔디바 루머 - 사건 당시 마리안느의 음부에 초코바를 꼽아놓고

믹 재거가 먹고 있었다는 루머 ) 더욱 상황을 악화 시켰다.

 

마리안느는 `순수한 소녀`에서 `더러운 소녀`의 아이콘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그녀를 `천사의 얼굴을 한 창녀`라고 불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함께 있던 롤링스톤즈의 멤버들은 오히려 그 사건이후 악동의 이미지를 더욱 굳혔고

반항적인 망나니 밴드로서 더욱 승승장구하게 된다.

 

단지 유일한 여자였던 마리안느는 언론에 의해 철저히 짓밟혀져갔다.

 

그렇게 타락했던 소녀에게 또 한번의 아픔이 찾아온다.

 

 

바로 믹 재거의 아이를 유산하게 된 것, 유일한 희망이라 믿었던 아이까지 잃게 되자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녀는 자살을 시도한다.

 

이후 그녀는 더욱 마약에 빠져들고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다.

 

처음 그녀를 마약에 끌어들인 믹 재거조차 감당할 수 없을만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던 마리안느 페이스풀

 

마약은 그녀를 인생의 끝으로 몰아갔다.

 

마약과 담배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굵어졌고, 갈라지고 거칠어져갔다.

`밀리언 시가렛 보이스`라고 불릴 만큼 예전의 청아한 목소리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곧 이모든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함께했던, 마약과 명성의 세계로 그녀를 침몰시킨 장본인 믹 재거와 이별한다.

 

이후 다시 마리안느는 재기를 꿈꾸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최고 미남 배우였던 알랭 드롱과 영화 출연을 해서 `세기의 연인`이란 수식어를 얻고 재기한듯 싶었으나

결국 그때 뿐이었다.

 

이미 완벽한 마약 중독자가 되어버린 마리안느는 스스로를 `dirty little girl`이라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약과 담배가 상징인 여가수`란 불명예를 얻으며 무너져 갔다.

 

결국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한때 사람들의 아이콘이었던 소녀는 마약에 찌들어 스스로 방황하며

런던 거리의 노숙자로 2년간 생활한다.

 

아들 니콜라스의 양육권은 첫 남편, 아이의 아빠에게 넘어간지 이미 오래였다.

 

 

한편 전 연인이었던 믹 재거는 마리안느와 이별 뒤에 만난 모델 비앙카와 7개월간의 열애끝에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잘 나가던 소녀가 마약과 명성에 빠져 타락하는 인생.

마치 `팩토리 걸`의 `에디 세즈윅`과도 닮은 마리안느 였지만 한가지 다른점은 그녀는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나이들고 예전의 미모는 사라지고, 또한 칭송받던 목소리조차 사라진 마약중독자인 그녀

 

다행히도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이 그녀를 구원했다.

 

결국 아들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마약과의 이별에 성공한다.

 

 

 

재활을 준비하면서 유방암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절망하지 않고 모든 치료를 이겨내며 재기에 노력했다.

 

결국 예순이 넘은 나이에 그녀는 영화배우로서 다시 컴백하게 된다.

 

2007년 영화 `이리나 팜`에서 손자의 수술비를 위해 창녀가 된 할머니 역활을 맡아 호평을 받는 그녀

 

화려했지만 순식간에 타락해버린 그녀의 과거와도 같았던 영화, 그 영화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자랑스러워. 이건 더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

나로서는 저절로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였으니까."

 

"내 삶은 내 삶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살고 있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그녀의 삶은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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